본문 : 히브리서 12:1

1 그러므로 이렇게 구름 떼와 같이 수많은 증인이 우리를 둘러싸고 있으니, 우리도 갖가지 무거운 짐과 얽매는 죄를 벗어버리고, 우리 앞에 놓인 달음질을 참으면서 달려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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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사는 삶은 선택의 연속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생활을 보면 여러 가지 일들 중에 무엇인가를 선택해야 합니다. 오늘 새벽 여러분이 잠을 더 잘것이냐 새벽 예배에 올것이냐 분명 선택했어야 했습니다. 그리고 새벽예배에 나오기로 선택한 것입니다. 어떤 분들은 그냥 자는 것을 선택해서 지금도 주무시고 계실 겁니다.

내가 무엇을 선택한다는 것은 동시게 무엇인가를 포기하는 것입니다. 고등학생이 대학을 갈 때 A 라는 대학을 선택했다면 B, C 그 외의 다른 대학은 포기한 것입니다. 내가 오늘 점심에 갈비탕 대신에 돌솥밥을 선택했다고 해서 문제 될 것이 없습니다. 어떤 색깔의 신발을 선택할 것인지, 어떤 스타일의 옷을 살 것인지 무엇을 선택해도 내 삶에 그다지 큰 영향을 주지 않는 선택들이 있습니다. 어떤 선택을 해도 내 삶에 큰 영향을 주지 않는 선택은 쉽게, 빠르게 결정하면 됩니다.

하지만 우리가 살아가면서 신중하게 잘 선택해야 하는 것들이 있습니다. 그 선택이 내 삶과, 내 인생과, 내 신앙과, 영원한 삶에 영향을 끼치는 것인지 아닌지를 잘 분별해야 합니다. 잘 선택해야 합니다. 우리가 인생을 성공하고, 또 신앙생활에서 성공하기 위해서는 바른 선택이 중요합니다.

좋은 선택을 하기 위해서는 차선의 선택을 포기해야 합니다. 최선의 선택, 좋은 것을 선택하기 위해서는 나쁜 것, 덜 좋은 것을 포기해야 합니다. 중요하지 않는 것을 포기하지 않고는 중요한 것, 좋은 것을 선택할 수 없습니다. 중요한 것을 선택해야지만 성공할 수 있습니다. 또한 중요한 것에 집중해야지만 성공할 수 있습니다. 집중하고 선택한다는 것은 포기하는 것입니다. 성공하는 사람을 덜 중요한 것들을 포기할 줄 하는 사람입니다. 성공한 운동선수들을 보십시오. 운동에 성공하기 위해서 많은 것을 포기합니다. 먹는 것을 포기하고, 편한 시간을 포기하고, 친구들과 노는 시간을 포기하고, 하고 싶은 것을 포기합니다. 할 것 다 하면서 성공하지 못합니다.

1927년도에 찰스 린더버그라는 사람이 처음으로 비행기로 뉴욕에서 파리까지 횡단했습니다. 그 전에 수많은 사람들이 시도했지만 실패했지만 린더버그 라는 사람이 성공할 수 있었던 비결은 비행기 무게를 최대한으로 줄인 것입니다. 엔진도 하나 떼어서 단발 엔진을 사용했습니다. 무게를 줄이기 위해 나는데 필요한 것 외에 모든 장식, 모든 부품을 다 제외시키고 무게를 줄이기 위해서 낙하산까지 포기하고 비행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성공했다는 것입니다. 포기하고 버려야 성공할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도 우리에게 믿음의 삶을 살기 위해서 버려야 함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1절 “그러므로 이렇게 구름 떼와 같이 수많은 증인이 우리를 둘러싸고 있으니, 우리도 갖가지 무거운 짐과 얽매는 죄를 벗어버리고, 우리 앞에 놓인 달음질을 참으면서 달려갑시다”“우리도 갖가지 무거운 짐과 얽매는 죄를 벗어버리고” 믿음의 삶을 살기 위해서는 버려야 할 것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따라 가기 위해서, 영적인 승리를 위해서는 버려야 할 것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신앙의 삶을 성경은 경주자의 삶으로 비유합니다. 경주하는 삶, 마라톤에 뛰는 사람들은 무거운 것을 걸치지 않습니다. 조금이라도 몸을 가볍게 하기 위해서 모든 것을 다 버리고 뜁니다. 믿음의 삶을 살기 위해서도 우리가 버려야 할 것이 있다는 것입니다. 버려야 할 것들이 많이 있지만 오늘 두가지만 나누기를 원합니다. 우리가 버려야 할, 우리로 질질 끌려 다니게 하는, 우리의 신앙의 발걸음을 무겁게 하는, 얽매이게 하는 것들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첫째, 욕심을 버려야 합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내 욕심을 버리지 않고 그대로 가지고 달리면 성장하지도, 성숙하지도, 성공하지도 못합니다. 사단의 속임수가 무엇입니까? 더 많은 것을 이 땅에서 소유해야 행복하고 성공한다는 속임수입니다. 그래서 이 세상의 성공의 기준이 무엇입니까? 누가 더 많은 재물을 소유하고 있는가에 대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부르셨을 때 동일한 공통점들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자신들이 가지고 있었던 것마저 버리고 예수님을 좇았다는 것입니다. 베드로와 야고보, 요한이 예수님을 좇을 때 그들이 가지고 있었던 배와 그물을 버리고 쫓았습니다. 마태가 예수님을 쫓았을 때 세금 테이블을 버리고 쫓았습니다. 부자 청년이 예수님을 찾아와 어떻게 해야 구원을 받느냐고 물었을 때 예수님께서 네가 가진 재물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 주고 나를 좋으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신앙 생활을 하기 위해서 내가 가진 모든 소유와 직업을 버리고 좇아야 한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예수님을 좇기 위해서, 신앙생활을 바로 하기 위해서 내가 붙잡고 있는, 내 삶의 우선과 중심이 되었던 세상적인, 물질적인, 명예적인 모든 욕심들을 버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여전히 욕심이 생깁니다. 욕심대로 삽니다. 그것은 바로 예수님 뜻대로 산다고 하고, 주님을 위하고, 교회를 위한다고 하지만 깊은 내면에는 나도 모르게 내 생각, 내 뜻, 내 계획과 원함대로 되기를 원하는 마음들이 있습니다. 이러한 것들이 바로 욕심입니다. 내가 생각하는대로 일이 이루어져야 하고, 누가 뭐라고 해도 내 뜻대로 하고, 내가 원하는대로 되기를 고집하는 모습이 바로 욕심입니다. 이러한 욕심이 있을 때 신앙이 자라지 않습니다. 성숙되지 않습니다. 불화와 관계들이 깨집니다. 교회를 어렵게 합니다.

사단은 천사의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좋은 것 같은 겉포장으로 우리에게 욕심을 감추게 합니다. 욕심대로 하려는 마음을 갖게 합니다. 이것을 분별하고 버려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우리에게 보여 주신 모습이 무엇입니까? 내 뜻을 하나님의 뜻에 내려놓는 것입니다. 나의 원함과 욕심을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분명히 깨닫고 내려놓는 것입니다.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의 원하신 뜻 아래 나의 좁고 편협한 욕심을 내려놓는 것이 필요합니다. 욕심의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달려가는 헤이워드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둘째, 염려를 내려 놓아야 합니다. 믿음의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 우리가 버려야 할 것이 염려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 선하게 이루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모든 염려를 다 짊어지고 사는 분들이 있습니다.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부르고 기도하면서 모든 문제와 염려를 자신이 다 책임지려고 하는 미련한 분들이 있습니다.

염려는 우리의 마음을 갉아 먹습니다. 우리의 신앙을 흔들리게 합니다. 불행하게 살게 합니다. 감사와 기쁨을 빼앗아 갑니다. 삶의 가장 중요한 것을 보지 못하게 합니다. 염려는 언제 합니까? 왜 합니까? 대부분 문제가 생길 때 합니다. 그러나 문제가 문제가 아니라 문제만 보는 것 때문에 염려하는 것입니다. 문제는 누구에게나 생깁니다. 그러나 문제만 보느냐? 문제보다 더 크시고 우리에게 그 문제를 허락하셨고 우리를 다듬으시고 믿음으로 세우시고 승리하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을 보느냐의 시각의 차이에 달려 있습니다.

유명한 작가나 화가들을 보면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보는 눈이 있습니다. 평범한 모습 속에서도 아름다움을 볼 수 있는 눈을 가진 사람들이 유명한 그림을 그립니다. 좋은 사진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보지 못하는 각도에서 사진을 찍을 때 아름다운 작품이 나오는 것입니다.

정말 평범하지만 우리들에게 감동을 주는 그림들이 있습니다. 밀레가 그린 만종이라는 그림입니다. 그 그림을 어떻게 보면 너무 평범한 그림입니다. 석양이 지는 시간에 농부 부부가 밭에서 서서 기도하는 그림입니다. 그런데 밀레는 그 그림속에서 우리가 잘 보지 못하는 것을 보고 깨달은 것입니다. 두 농부가 온 종일 밭에서 일을 한 후에 마주서서 기도하는 모습. 뒤에는 교회가 있고 교회의 종소리가 들리는 것 같습니다. 밀레는 두 부부의 함께 기도하는 모습 속에서 하루를 일할 수 있는 것에 대한 감사의 기도를 드리는 농부의 모습을 보았고 노동의 신성함과 신앙, 사랑을 함께 본 것입니다. 그것을 보고 화폭에 담았기에 그 그림을 보면서 우리가 보지 못한 깊은 감동을 느끼고 사랑하는 것 아닙니까?

우리는 명화를 그리지는 못해도 하나님의 선하심과 손길을 볼 수 있는 영적인 눈이 있어야 합니다. 염려하는 사람들의 특징은 하나님의 시각, 신앙의 시각으로 일어나는 일들을 보지 못합니다. 자기 뜻대로 일이 되지 않으면 모든 것이 다 망할 것 같이 생각합니다. 문제가 생기면 문제만 봅니다. 나를 힘들게 한 사람만 봅니다. 내게 상처준 말만 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염려합니다. 미워합니다. 원망합니다. 불신앙의 태도, 신앙의 모습이 아닌 세상적인 모습을 보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 곳곳에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을 향해 “염려하지 말라” 라고 명령하십니다. 빌립보서 4:6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아뢰라”라고 명하십니다. 하나님의 명령대로 염려하지 말고 감사와 기도하는 자가 되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의 선하심과 능력의 손길을 믿고 하나님의 때와 역사를 기다리며 기도하는 사람이 되기를 원합니다.

사실 우리 삶 속에 염려할 것을 찾으면 얼마나 많습니까? 그런데 대부분 우리가 염려하는 염려는 실제로 일어나지 않을 일들을 염려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습니까? 염려하는 인생이 아니라 기도하는 인생, 걱정하고 근심하는 인생이 아니라 묵묵히 하나님의 능력을 믿고 기도하며 승리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러한 삶을 살기 위해서 1절에 “그러므로 이렇게 구름 떼와 같이 수많은 증인이 우리를 둘러싸고 있으니, 우리도 갖가지 무거운 짐과 얽매는 죄를 벗어버리고, 우리 앞에 놓인 달음질을 참으면서 달려갑시다”라고 권면하고 명령하시는 것입니다. 내 욕심, 내 염려, 내 생각, 내 계획을 위해 살아가는 자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사명을 위해, 우리 앞에 놓여 있는 천국을 향해, 우리를 위해 예비하신 상을 위해 달음질 하는 성도가 되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사명, 하나님의 약속하신 영원한 천국과 하늘의 상이 있음을 알고 깨닫고 믿는 성도들은 세상의 것, 욕심과 염려를 버릴 수 있습니다. 거짓을 버리고, 욕심을 버리고, 나의 편함을 버리고, 내 뜻과 고집을 버리고 하나님의 부르심을 향해 달려가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Category말씀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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