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고린도전서 13:5

5 사랑은 무례하지 않으며, 자기의 이익을 구하지 않으며, 성을 내지 않으며, 원한을 품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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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본문에서 하나님의 사랑, 하나님을 믿고 구원 받은 성도가 된 우리가 해야 할 사랑은 성을 내지 않는 사랑이라고 알려 주십니다. 감정을 가진 우리가 성을 나고 분이 나는 것은 잘못된 것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감정입니다. 그렇기에 감정이라고 말할 때 희노애락이라고 표현합니다. 기쁨, 분노, 슬픔과 즐거움입니다. 어떤 일이나 상황 속에서 분노와 성이 나는 것은 잘못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 분노를 어떻게 표출하느냐가 중요합니다. 분노를 다스릴 수 있어야 합니다. 분노를 다스리고 절제하지 못하면 죄를 짓게 되기 때문입니다. 창세기 4장에 가인이 동생 아벨을 죽이는 사건이 나옵니다. 그 일의 발단은 하나님께서 믿음의 제사, 하나님께 마음과 정성을 다해 최선의 것을 드린 아벨의 제사는 받으시고 그렇지 않은 가인의 제사는 받지 않으셨습니다. 그로 인해 가인이 분노했습니다. 그렇기에 하나님께서 창세기 4:6절에 가인에게 “어찌하여 네가 화를 내느냐? 얼굴빛이 달라지는 까닭이 무엇이냐? 죄가 너의 문에 도사리고 앉아서, 너를 지배하려고 한다. 너는 그 죄를 잘 다스려야 한다” 라고 경고하셨습니다.

분노함을 다스리지 못하면 죄를 짓게 되며 상대방을 해하게 되고 결국 자신도 망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안타깝게도 가인은 분을 다스리지 못했습니다. 성을 내었습니다. 분노가 밖으로 나와 결국 동생 아벨을 돌로 쳐 죽이는 살인죄를 지었고 그로 인해 하나님의 저주를 받는 자가 되었습니다.

언제 우리 마음에 성이 납니까? 왜 분노하고 열불이 난다고 합니까? 수많은 이유들이 있습니다. 일이 내 뜻대로 되지 않을 때, 상대방이 나의 기준에 맞지 않을 때, 내 말과 뜻대로 따르지 않을 때, 내가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다고 느낄 때 등등입니다. 하지만 겉으로는 여러 가지 수많은 이유들이 있다고 내가 성이 나고 분노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우리가 분노하는 이유는 내가 교만하기 때문입니다. 내가 낫다고, 의롭다고 생각하는 교만함 때문입니다.

교만한 마음, 의로운 마음이 가득하게 되면 모든 탓을 다른 사람에게 돌리고 성을 내게 됩니다. 분노함으로 정죄와 비난, 불평과 원망의 말을 쏟아 놓게 됩니다. 그럼 상대방은 그런 나의 분노와 비난, 정죄, 판단을 100% 내가 맞다고 수긍하고 잠잠히 받아 들입니까? 분노를 표출한 상대방에게 반격합니다. 내가 뭘 잘못했냐? 라고 따지고 자신의 옳음을 대변합니다.
그로 인해 상처를 주고 분열과 나뉨, 싸움이 일어납니다.

성내는 사람의 특징은 자기 의가 많은 사람입니다. 탕자의 비유에서 맏아들은 자기 의가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은 동생과 같아 아버지의 재산을 탕진하지 않다고 말합니다. 자신은 아버지 말을 어긴 적이 없었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아버지의 재산을 가지고 나가 탕진하고 동생이 돌아왔을 때 아버지가 돌아온 아들을 받아 주고, 기뻐하며 살진 송아지를 잡아 동네 사람들을 초청하여 큰 잔치를 벌이자 이 모습을 보고 몹시 성을 내었습니다. 누가복음 15:8절을 보면 “큰 아들은 화가 나서, 집으로 들어가려고 하지 않았다” 개역성경에는 “그가 노하여 들어가기를 즐겨 아니했다”고 말합니다.

인간적으로 볼 때는 정말로 내쳐야 하고, 혼을 내야하고, 받아 주지 말아야 할 동생이지만 하나님의 마음은 그러한 죄인도 불쌍히 여기며 돌아온 그 모습을 기뻐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형은 아버지의 마음을 알지 못하고 교만한 마음, 자신이 의롭다는 생각으로 그 동생에 대해 분노하며 아버지에게 원망과 불평을 쏟아 놓은 것입니다.

분노와 성을 내는 것은 아무리 내가 옳다고 해도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합니다.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의 원망과 불평에 참다못해 분노하여 지팡이로 바위를 때리며 “내가 너희에게 얼마나 참으리요” 라고 인간적인 분노를 절제하지 못했을 때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는 결과를 받습니다.

그래서 야고보서 1:20절은 우리에게 권면합니다.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너희가 알거니와 사람마다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며 성내기도 더디하라. 사람의 성내는 것이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함이니라” 성을 내면 사단이 역사합니다. 영적인 분별력을 잃습니다. 성을 내서 일이 해결되지 않습니다. 분노를 받은 사람의 마음을 날카롭게 찔러 상처를 입히고 대적하게 만듭니다. 결국 관계가 깨지고, 하나됨이 깨어집니다.

그래서 잠언 16:32절에 “노하기를 더디 하는 사람은 용사보다 낫고,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는 사람은 성을 점령한 사람보다 낫다” 라고 말합니다. 화가 머리 끝까지 치밀 때 그 분노를 억제하고 마음을 다스리는 사람이 진정 성숙한 자요 사랑의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화와 분노를 다스리는 것은 성을 빼앗는 것보다 어려운 일이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많은 사람들과 부딪히면서, 여러 가지 상황과 문제를 만날 때 성날 때가 한 두 번이 아닙니다. 너무 화가 나서 도저히 참을 수 없을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분노를 다스려야 합니다. 노하기를 더디해야 합니다. 우리를 사랑하셔서 십자가의 고난과 고통을 받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묵상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사랑, 성내지 않으시고, 자신의 분노를 다스리시고 더 나아가 그 악하고 내쳐야 할 죄인들을 품으신 주님의 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다른 사람이 아닌 나를 오래 참으시고 성내지 않으시고 온유함으로 대하신 그리스도의 사랑을 드러내야 합니다.

성내지 않는 마음, 자신의 분노를 다스리기 위해서 겸손한 마음이 필요합니다. 상대를 긍휼히 여기고 품을 수 있는 사랑의 마음이 필요합니다. 그러한 사랑을 감당할 수 있도록, 성내지 않는 사랑, 오래 참고 친절하며 자기 이익을 구하지 않고 성내지 않는 사랑의 사람으로 설 수 있는 성령의 충만함, 십자가의 사랑으로 충만하기를 기도하기 원합니다.

Category말씀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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