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골로새서 2:7-8

7 여러분은 그분 안에 뿌리를 박고, 세우심을 입어서, 가르침을 받은 대로 믿음을 굳게 하여 감사의 마음이 넘치게 하십시오.
8 누가 철학이나 헛된 속임수로 여러분을 노획물로 삼을까 조심하십시오. 그런 것은 사람들의 전통과 세상의 유치한 원리를 따라 하는 것이요, 그리스도를 따라 하는 것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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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함께 나누었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을 믿어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 받은 우리들의 삶은 7절의 말씀과 같이 예수 안에, 하나님의 말씀 안에 뿌리를 박고, 세움을 입어서 흔들림 없이 열매 맺는 삶, 예수님을 닮아가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것이 성도의 마땅한 삶입니다.

그리고 2장 7절 끝에 보면 “감사의 마음이 넘치게 하라”라고 명합니다. 성도된 우리들의 감사함은 상황이나 형편에 따라 나오는 감사가 아닌 바로 복음에서 나오는 감사입니다.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십자가에서 생명을 버리시고 우리의 죄를 용서하심,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심과 영원한 천국을 주신 그 놀라운 은혜에 대한 깨달음과 감격이 있을 때, 우리를 사랑하시어 모든 일 가운데 선하게 인도하시고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깨달을 때 우리의 삶에는 언제, 어디서나, 어떠한 형편에서도 감사의 마음이 넘치게 되어 있습니다.

오늘 본문 8절을 보면 “누가 철학이나 헛된 속임수로 여러분을 노획물로 삼을까 조심하십시오”라고 경고합니다. 철학이나 헛된 속임수란 쉽게 말해서 세상의 생각, 인간적인 생각, 죄악된 생각이요 영적으로 본다면 사단의 속임수입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기 전에는 속고 살았습니다. 그런 모습을 에베소서 2:1-3절에 “여러분도 전에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사람들입니다. 그 때에 여러분은 허물과 죄 가운데서, 이 세상의 풍조를 따라 살고, 공중의 권세를 잡은 통치자, 곧 지금 불순종의 자식들 가운데서 작용하는 영을 따라 살았습니다. 우리도 모두 전에는, 그들 가운데에서 육신의 정욕대로 살고, 육신과 마음이 원하는 대로 행했으며, 나머지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날 때부터 진노의 자식이었습니다”라고 말합니다. 예수 믿기 전에 우리는 속아서 세상 풍조를 따라 살았고, 공중 권세 잡은 통치자, 불순종의 자식 가운데서 작용하는 영, 즉 사단에 속아서 죄와 허물 가운데 살았다는 것입니다.

우리로 하여금 예수를 믿지 못하게 한 것 역시 사단에 속아서라고 고린도후서 4:3-4절에 말합니다. “만일 우리 복음이 가리웠으면 망하는 자들에게 가리운 것이라 그 중에 이 세상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케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체가 비취지 못하게 함이니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이니라”조금 더 구체적으로 살펴 본다면 우리의 마음에 감사함이 넘치지 않는 것도 세상의 철학과 헛된 속임수에 말려 들었기 때문입니다.

사실 우리가 영적인 눈을 떠서 나 자신과 삶의 주위를 살펴보면 하나님께서 주신 놀라운 은혜로 감사할 것들이 차고 넘칩니다. 하지만 사단에 속으면 감사할 것을 보는 것이 아닌 원망하고 불평할 것만 보입니다. 그렇기에 사단에게 속고 사는 삶이 불행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언제 이러한 사단의 속임수를 깨닫고 벗어날 수 있습니까 바로 복음을 받고 깨달을 때입니다. 철학이란 인간의 사상입니다. 인간적인 기준으로 볼 때는 논리적이고 맞는 것 같습니다. 고개가 끄덕여집니다. 반면 복음은 논리적이지 않습니다. 구원 받는 길을 생각해 보십시오. 세상의 철학은 착한 일, 선한 일, 인간의 노력으로 덕을 쌓고, 봉양을 많이 하고, 참선을 하고, 마음을 비우는 내 힘, 내 노력, 내 애씀, 나의 선함으로 구원을 받는다고 가르칩니다. 이해가 됩니다. 고개가 끄덕여 집니다.

그러나 복음은 어떻습니까? 나의 선함, 나의 노력, 나의 공력으로 구원을 받지 못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믿기만 하면 은혜로 구원을 받는다고 합니다. 세상의 기준으로 이해되지 않는 말입니다. 왜냐하면 8절의 말씀과 같이 세상의 철학과 헛된 속임수에 속아 살아가는 것에 젖어 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철학이란 인간이 만들어 낸 것입니다. 인간의 머리로, 지혜로 인간이 이해할 수 있도록 만들어 놓은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의 머리, 인간의 지혜는 한계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잠언 16:25절에 “어떤 길은 사람의 보기에 바르나 필경은 사망의 길이니라”철학의 반대가 바로 복음입니다. 그렇기에 진정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깨달아지면 “그동안 내가 속고 살았구나” 라고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내가 그동안 세상에 속고 살았구나. 내가 사단에 속고 살았군. 내가 헛 똑똑이였구나. 내가 죄인이었구나” 라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구원자이시오 생명의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살았어야 하는데 내 뜻, 내 원함, 내 욕심을 따라 살았던 것이 죄인인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을 믿고 구원 받은 후 성령님이 우리 안에 들어오셔서 우리의 영적인 눈을 열어 주셨을 때 우리가 경험하는 것이 아닙니까?

그러한 우리들이 어떠한 삶을 살아야 할지를 다시 한번 도전하는 구절이 바로 8절입니다. “누가 철학이나 헛된 속임수로 여러분을 노획물로 삼을까 조심하십시오. 그런 것은 사람들의 전통과 세상의 유치한 원리를 따라 하는 것이요, 그리스도를 따라 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제 다시는 사단에 속아 사는 삶, 세상의 기준과 방법대로 속아서 살아가는 죄의 노예로 살아가는 노획물로 살지 않도록 영적으로 분별하여 살라는 것입니다. 세상의 삶과 방법이 옳고, 바르고, 지혜로운 것 같지만 영적인 분별력을 가지고 보면 유치하고 망하게 하는 길임을 분명히 깨닫고 그리스도를 따라가는 삶을 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인본주의, 자유주의, 복음을 대항하는 정신으로 가득한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절대적 진리라는 것을 불신하고 변질된 신앙으로 가득한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을 통하여 오늘 주시는 경고에 귀를 기울여 영적인 분별력을 가지고 이 세상을 본받는 자가 아닌 하나님의 온전하신 뜻을 따라 살아가는 신앙으로 서기를 원합니다.

Category말씀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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