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야고보서 3:13-18

13 여러분 가운데서 지혜 있고 이해력이 있는 사람이 누구입니까? 그러한 사람은 착한 행동을 하여 그의 행실을 나타내 보이십시오. 그 일은 지혜에서 오는 온유함으로 행하는 것이어야 할 것입니다.
14 여러분의 마음 속에 지독한 시기심과 경쟁심이 있으면 자랑하지 말고, 진리를 거슬러 속이지 마십시오.
15 이러한 지혜는 위에서 내려온 것이 아니라, 땅에 속한 것이고, 육신에 속한 것이고, 악마에게 속한 것입니다.
16 시기심과 경쟁심이 있는 곳에는 혼란과 온갖 악한 행위가 있습니다.
17 그러나 위에서 오는 지혜는 우선 순결하고, 다음으로 평화스럽고, 친절하고, 온순하고, 자비와 선한 열매가 풍성하고, 편견과 위선이 없습니다.
18 정의의 열매는 평화를 이루는 사람들이 평화를 위하여 그 씨를 뿌려서 거두어들이는 열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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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각은 자유라고 하는 말이 있지만 우리 대부분은 내가 제일 지혜롭다 라고 생각하며 살아갑니다. 내 생각이, 내 의견이, 내 방법이 가장 최선이고 가장 지혜로운 생각이다 라고 생각하기에 자기 생각, 자기 뜻, 자기 계획대로 결정하며 내가 주인이 되어 살아가지 하나님을 내 인생의 주인으로 믿고 모시고 살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나 내가 하나님보다 더 지혜롭다고 생각하며 하나님을 믿지 않고, 하나님의 지혜를 구하지 않고 살아가는 것처럼 미련한 삶이 없습니다. 우리를 창조하셨고 모든 것을 아시고 모든 능력이 있으시며 우리를 사랑하셔서 우리의 인생을 인도하여 주시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이 계시는데 그 하나님께 나의 인생을 맡기지 않고, 그 하나님께 도움과 지혜를 구하지 않고 하루 앞도 예측하지 못하면서, 작은 병에도 쉽게 넘어지는 연약한 존재이면서, 한번 바람 불면 모든 것을 다 잃어버리는 힘 없는 인생이면서 내 인생, 내 가족, 내 직장 내가 책임지고 살아가겠다고 하나님을 믿지 않고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미련합니까?

내 자신을 믿고 내 생각, 내 계획, 내 능력으로 살아가는 자가 아닌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의 도우심과 지혜를 구하며 살아가는 자가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그래서 야고보서 3:13절에 “여러분 가운데서 지혜 있고 이해력이 있는 사람이 누구입니까? 그러한 사람은 착한 행동을 하여 그의 행실을 나타내 보이십시오. 그 일은 지혜에서 오는 온유함으로 행하는 것이어야 할 것입니다” 라고 말합니다.

야고보 사도는 우리가 이 땅을 살아갈 때 결국 두 가지 종류의 지혜를 따라 살아간다고 말합니다. 하나는 하늘의 지혜이고 다른 지혜는 세상의 지혜입니다. 야고보 사도는 세상의 지혜를 땅의 지혜, 육신의 지혜, 그리고 악마의 지혜라고 표현합니다. 15절 “이러한 지혜는 위에서 내려온 것이 아니라 땅에 속한 것이고 육신에 속한 것이고 악마에 속한 것입니다”

지혜는 둘 중의 하나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 즉 위에서 오는 지혜가 있고 사단의 지혜, 즉 세상의 지혜, 육신의 지혜입니다. 쉽게 말하면 하나님이 주시는 하늘의 지혜는 우리를 살리고 결과가 선하게 이루어지게 하는 지혜입니다. 그러나 사단의 주는 지혜는 금방은 좋아 보이지만 결과는 언제나 악하고 안 좋게 이루어지게 하는 지혜입니다.

어떠한 모습이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 위에서 오는 지혜입니까?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 위에서 오는 지혜의 첫 번째 특징은 온유함입니다. 야고보서 3:13절 “여러분 가운데서 지혜 있고 이해력이 있는 사람이 누구입니까? 그러한 사람은 착한 행동을 하여 그의 행실을 나타내 보이십시오. 그 일은 지혜에서 오는 온유함으로 행하는 것이어야 할 것입니다”하늘에서 오는 지혜,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의 특징은 온유함입니다. 누가 지혜로운 사람입니까? 기도를 많이 하는 사람, 성경을 많이 아는 사람, 말을 잘하는 사람, 교회를 오래 다닌 사람, 집사나 어떤 직책을 가진 사람입니까? 아닙니다. 누가 하나님의 지혜를 가지고 있는가를 보려면 그 분에게 온유함이라는 성품이 있는지를 보라는 것입니다. 그 사람의 행동과 태도에 온유함이 있으면 그 사람에게 하나님의 지혜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왜 많은 성품가운데 온유입니까? 그 이유는 예수님의 성품이 온유하시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 11:28-29 “수고하며 무거운 짐을 진 사람은 모두 내게로 오너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겠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나한테 배워라 그리하면 너희는 마음에 쉼을 얻을 것이다”예수님께서 자신의 성품이 이러하다 라고 하실 때 다른 것이 아닌 내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다 라고 표현했습니다. 사실 온유와 겸손이 같은 의미입니다.

예수님의 성품이 온유하시고 겸손하시기 때문에 그분에 가까이 가면 마음이 편해지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아시는 많은 분들 가운데 함께 하고 싶은 사람이 있습니다. 함께 하면 마음이 편한 사람이 있습니다. 어떤 말을 해도, 어떤 행동을 해도 나를 받아 줄 수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의 특징을 보면 온유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을 만날 때는 마음이 편하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다. 말 한마디 한마디를 신경 써야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지혜로운 사람, 신앙이 성숙한 사람은 온유한 사람입니다. 다른 사람의 마음을 편하게 해 주는 사람입니다. 그 온유함이 바로 하나님께로 오는 지혜라는 것입니다.

온유한 것이 무엇입니까? 순한 것이 온유입니까? 남이 하자고 하면 그대로 따라 하는 모습이 온유한 모습입니까? 온유함에는 순한 면이 있지만 그것이 다가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나는 온유하다고 하셨지만 남이 하자는대로, 남의 비유를 맞추며 살지 않았습니다. 온유란 힘이 있지만 쓰지 않는 능력이 온유입니다. 할 수 있는 능력이 있지만 참을 수 있는 것이 능력입니다. 누군가 내 오른뺨을 때렸을 때 내가 그 사람의 양 뺨을 때릴 힘이 있지만 때리지 않는 절제의 힘이 온유입니다.

내가 많이 알더라도 드러내지 않고 배우려는 겸손한 모습이 온유입니다. 구제할 때 왼손이 하는 일을 오른손이 모르게 하는 모습이 온유함입니다. 나와 함께 하는 사람이 내 맘에 들지 않고 나를 힘들게 할 때 감정대로 할 수 있지만 참을 수 있는 능력이 온유입니다. 내가 할 수 있지만 내 감정대로 내 힘대로 하지 않고 control 할 수 있고 내가 받을 수 있는 권리가 있지만 그 권리를 내려놓을 수 있는 힘이 바로 온유입니다.

온유함의 최고의 모습이 바로 예수님의 십자가입니다. 예수님께서 힘이 없어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습니까? 아닙니다. 힘이 없고 약하셔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것이 아니라 죄인 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하늘 보좌를 버리시고 이 땅에 오셔서 스스로 십자가를 지신 것이 바로 온유함의 모습입니다. 그러한 온유함으로 살아가는 것이 바로 하늘에서 오는 지혜입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주시는 생각입니다.

하늘의 지혜, 하나님의 주시는 생각은 온유함입니다. 이 온유함으로 나타나는 결과는 평화입니다. 18절 “정의의 열매는 평화를 이루는 사람들이 평화를 위하여 그 씨를 뿌려서 거두어들이는 열매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온유함을 따라 행동하면 결국 평화의 열매를 맺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어떠한 사람이 하늘의 지혜를 받아 살아가는 사람입니까? 평화를 이루는 사람이 바로 하늘의 지혜를 받아 사는 사람입니다.

그와 반대로 사단의 지혜, 세상의 지혜, 육신의 지혜를 따라 살면 다툼과 혼란이 일어납니다. 14-15절 “여러분의 마음속에 지독한 시기심과 경쟁심이 있으면 자랑하지 말고 진리를 거슬러 속이지 마십시오. 이러한 지혜는 위에서 내려온 것이 아니라 땅에 속한 것이고 육신에 속한 것이고, 악마에 속한 것입니다. 시기심과 경쟁심이 있는 곳에는 혼란과 온갖 악한 행위가 있습니다” 아까도 말씀 드렸지만 사단의 지혜는 어떻게 보면 하늘의 지혜보다 더 옳고 바르고 더 좋은 것 같아 보입니다. 잘못된 것이 있으면 바로 지적하고, 바로 말하고, 책망하고 다른 사람에게 알리는 것이 속이 시원합니다. 지금 내가 이 상황이 힘들고 어렵고, 지금 나와 함께 하는 사람이 나와 맘이 맞지 않고 나를 힘들게 하면 끝내는 것이 지혜롭고 현명한 판단 같습니다. 내게 이익이 되지 않으면 하지 않고 손해보고 자존심 세우는 것이 맞는 것 같습니다. 누군가 나에게 해를 끼치면 더 크게 보복을 하는 것이 cool 한 것 같습니다.

마음에 시기와 경쟁심으로, 즉 미움과 자존심으로 하는 일들, 감정대로 말하고 행동하고 결정하는 모습이 바로 사단의 지혜, 세상의 지혜, 육신의 지혜를 따라 사는 모습입니다. 그래서 보통 사단이 우리 마음에 심어주는 생각들은 “당장 끝내라, 가만 두면 안된다, 그 사람하고 더 이상 상종하지 말아라, 더 이상 소망이 없다, 너만 손해다, 왜 그렇게 사냐? 왜 손해 보냐? 할말해라, 그 말하면 네 속이 시원해진다” 이런 생각들이 바로 사단이 주는 생각들입니다. 당시에는 그렇게 행동하고 말하고 결정하는 것이 좋을 것 같고 시원할 것 같지만 그 결과는 늘 분쟁과 싸움과 혼란이 생깁니다.

내가 하나님의 지혜를 따라 살아가는 사람인지, 하늘의 지혜를 따라 사는 사람인지 알 수 있는 것은 나로 인해, 내가 있는 곳이 평화가 있는지를 보면 압니다. 하늘의 지혜를 따라 살면 가정에 평화가 깃듭니다. 싸워야 할 일이 생겼고, 큰 소리가 일어날 상황 속에서 하늘의 지혜를 따라 사는 사람이 그 집에 있으면 평화스러워집니다. 하늘의 지혜를 따라 사는 온유한 성도가 많은 교회에서는 웬만해서는 분열이나 싸움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화목함, 하나됨이 일어납니다. 교회는 오래 다녔다고 하고 직분은 받았지만 하늘의 지혜를 따라 살지 않고 온유하지 않는 성도들이 교회에 많기에 교회에 어려움이 생기고 화평이 아닌 전쟁과 다툼이 끊이지 않는 것입니다.

이 시간 기도하며 나는 하늘의 지혜를 따라 사는 자인지 세상의 지혜를 따라 사는 자인지, 온유함으로 하나됨과 화목함을 이루어가는 자인지 시기와 미움으로 다툼과 분열을 일으키는 자인지 돌아보고 하늘의 지혜로, 온유함으로 하나됨과 화목됨을 이루어가는 자로 설 수 있기를 기도하기 원합니다.

Category말씀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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