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야고보서 3:9-12

9 우리는 이 혀로 주님이신 아버지를 찬양하기도 하고, 또 이 혀로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사람들을 저주하기도 합니다.
10 또 같은 입에서 찬양도 나오고 저주도 나옵니다. 나의 형제자매 여러분, 이렇게 해서는 안됩니다.
11 샘이 한 구멍에서 단 물과 쓴 물을 낼 수 있겠습니까?
12 나의 형제자매 여러분, 무화과나무가 올리브 열매를 맺거나, 포도나무가 무화과 열매를 맺을 수 있겠습니까? 마찬가지로 짠 샘은 단 물을 낼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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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사는 이 자연은 일관성이 있습니다. 언제나 해는 동쪽에서 뜨고 서쪽으로 집니다. 해가 뜨는 시간과 해가 지는 시간이 계절에 따라 동일합니다. 사과나무는 가을에 늘 사과가 달립니다. 작년에는 사과를 맺고 올해는 감이 맺지 않습니다. 이 세상에 하나님이 창조하신 모든 자연은 하나님의 법칙을 따라 일관성이 있는데 오직 인간만이 일관성이 아닌 이중성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겉과 속이 다릅니다. 속으로는 미워하면서 겉으로는 사랑하는 척 하기도 하는 위선, 한 것을 하지 않았다, 하지 않은 것을 했다고 거짓을 말합니다. 위선, 사기, 거짓, 위조, 배신 이러한 이중성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이 바로 우리 인간의 모이고 이중성은 우리 안에 죄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죄를 짓기 때문에 죄인이 아니라 죄인이기 때문에 죄를 짓고 사는 것입니다. 죄의 성품의 있기 때문에 이중성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는 자로 살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하나님의 자녀요 성도가 되었다면 죄된 이중성을 버려야 합니다. 일관성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일관성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의 성품은 일관성이 있는 성품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사랑은 변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변함이 없으십니다. 약속을 꼭 지키십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지체 중에 가장 일관성이 없는 것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우리의 혀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9-10절입니다. “우리는 이 혀로 주님이신 아버지를 찬양하기도 하고, 또 이 혀로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사람들을 저주하기도 합니다. 또 같은 입에서 찬양도 나오고 저주도 나옵니다. 나의 형제자매 여러분, 이렇게 해서는 안됩니다”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한 입으로 찬양도 하고 기도도 하는 입으로 다른 사람을 저주의 말, 조소하고, 업신여기고, 욕하고, 하나님의 거룩함을 드러내지 못하는 부정적이고 더러운 말들을 하지 않습니까? 그럴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11-12절에 “샘이 한 구멍에서 단물과 쓴 물을 낼 수 있습니까? 나의 형제 자매 여러분 무화과 나무가 올리브 열매를 맺거나 포도나무가 무화과 열매를 맺을 수 있겠습니까? 마찬가지로 짠샘은 단 물을 낼 수 없습니다” 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비록 구원 받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지만 우리 안에 죄성이 있기 때문에 이중적인, 해서는 안 될 저주의 말이 쉽게 나오기 때문에 혀를 제어하라는 것입니다. 조심하라는 것입니다. 혀를 다스리고 저주의 말, 부정적인 말, 덕이 되지 않는 말, 험담의 말,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는 말들을 버리고 감사와 찬양과 격려와 사람을 살리는 말만 입에서 쏟아내는 성도가 되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을 믿는 참된 성도의 모습이라는 것입니다.

혀는 자신의 인격을 재는 온도계인 동시에 온도 조절 장치이기도 합니다. 즉 말은 자신의 인격을 측정하기도 하지만 나 자신의 인격을 변화시키기도 합니다. 말에는 능력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말한 대로 이루어 주십니다. 원망과 불평의 말을 하나님께서 들으십니다. 또한 믿음의 말, 소망의 말도 하나님께서는 들으십니다.

아침에 일어나면서 무슨 말을 가장 먼저 하십니까? ‘아이고, 죽겠다.’라고 하십니까? 그렇게 시작하면 하루 종일 죽을 것 같은 일만 생깁니다. 아침에 일어날 때 이런 말을 하면 어떻습니까? ‘하나님, 사랑합니다. 오늘도 주님께서 도우시고, 인도하시는 축복의 하루가 될 것을 믿고 감사합니다’믿음의 말, 소망의 말을 하며 살면 축복된 하루, 감사와 기쁨이 넘치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긍정적으로 하는 말이 중요합니다. 무슨 긍정적 사고방식을 이야기하는 게 아닙니다. 우리는 사랑하기 때문에 사랑한다고 말을 하지만, 사랑한다는 말을 하면서 사랑이 생기기도 합니다. 감사하기 때문에 감사한다고 말을 하지만, 감사한다는 말을 하면서 감사가 생기기도 합니다. 우리의 감사, 사랑, 소망의 말은 우리를 사랑하시고 축복하시는 하나님께서 계시기 때문입니다.

행복과 축복은 하나님을 믿는 믿음 가운데 하는 말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옆에 있는 사람이 부정적인 말, 원망 불평의 말을 하면 죽을 맛입니다. 그러나 긍정적이로 아름다운 말을 들으면 행복해집니다. “고맙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잘하셨습니다. 힘드시죠? 참 좋습니다” 나의 말 한마디에 누군가의 하루가 행복해집니다. 내가 어떤 일을 실수하고 잘못했을 때 비난과 비판의 말을 들을 것을 기대했는데 “그럴 수 있습니다. 그동안 수고 많았고 늘 애써 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에 더 잘 하실 겁니다” 라는 말을 들으면 감동합니다.

우리의 말이 변하기 위해서는 결국 우리의 믿음과 마음, 다시 말해서 신앙의 인격이 바뀌어야 합니다. 9-10절을 다시한번 보겠습니다. “우리는 이 혀로 주님이신 아버지를 찬양하기도 하고, 또 이 혀로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사람들을 저주하기도 합니다. 또 같은 입에서 찬양도 나오고 저주도 나옵니다. 나의 형제자매 여러분, 이렇게 해서는 안됩니다”

지금 나의 신앙의 성숙함이 어떠한지는 어떤 말을 하며 살고 있는지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혀는 하나님을 믿는 나의 믿음의 상태와 깊이를 측정하는 온도계와도 같습니다. 하나님을 안다고 하지만 하나님의 선하심과 전능하심, 사랑하심을 분명히 믿는 믿음이 세워져 있지 않으면 광야를 지나던 이스라엘 백성들과 같이 입만 열면 불평과 원망, 비난의 말을 하며 삽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는 믿음과 마음이 바로 서있으면 어떠한 상황 속에서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인해 감사의 말, 소망의 말, 사랑의 말, 긍정의 말을 하게 됩니다. 말은 인격의 표현이기 때문에 인격을 바꾸지 않고 말만 바꾸는 것은 소용이 없습니다. 좋은 말을 사용해야지 결단만으로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속사람이 변하지 않고도 노력에 의해서 어느 정도 화를 자제할 수는 있습니다. 억지로 참을 수도 있습니다. 말을 어느 정도 조심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마음이 바뀌지 않는 한 언젠가 그것은 밖으로 나오게 마련입니다. 그런 식으로 억지로 참고 있다가 한 번 터지게 되면 아주 크게 터집니다. 조심해야 합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마음이 하나님을 진정 믿는 믿음의 마음으로 세워지기를 기도해야 합니다. 내 마음이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알기를, 내가 받은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 사랑, 용서를 깨닫고 감사하는 마음, 사랑하는 마음, 불쌍히 여기는 마음으로 가득차기를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의 마음이 예수님의 마음, 하나님의 마음, 그리고 그 선하신 하나님, 모든 것을 허락하시고 선하게 이루실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우리의 말이 쓴물과 단물을 내는 입이 아닌 오직 단물을 내는 축복의 샘물이 되기를 원합니다.

Category말씀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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