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골로새서 2:1-3

1 여러분과 라오디게아에 있는 사람들과 그밖에 내 얼굴을 직접 보지 못한 사람들을 위하여 내가 얼마나 애쓰고 있는지 여러분이 알기를 바랍니다.
2 내가 이렇게 하는 것은 여러분 모두가 사랑으로 결속되어 마음에 격려를 받고, 깨달음에서 생기는 충만한 확신의 모든 풍요에 이르고, 하나님의 비밀인 그리스도를 온전히 알게 하려는 것입니다.
3 그리스도 안에는 모든 지혜와 지식의 보화가 감추어져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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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서 요한복음 10장10절에 자신이 온 이유를 “내가 온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풍성한 삶을 얻게 하려 함이다”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시고자 하는 삶은 풍성한 삶, 풍요한 삶입니다. 우리 주위를 보십시오. 여러 가지 어려움과 문제들, 질병과 육신의 고통들, 답답한 일들과 근심과 걱정할 일들이 많습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진정 주님께서 약속하신 풍성한 삶을 살아가는 것이 가능합니까? 어떻게 내 마음에 주님의 풍성한 기쁨을 누릴 수 있습니까? 신약 성경에서 주님께서 약속하신 풍성한 삶을 산 사람을 한 사람 찾는다면 바로 바울입니다. 사도 바울의 삶은 인간적인, 세상적인 눈으로 보면 풍성한 삶을 살았다고 볼 수 없습니다. 가난하고, 배고프고, 수많은 유대인들에게 적대시함을 받고 도망쳐 살았고, 수없이 잡혀 몰매를 당하고, 몇 번이나 감옥에 들어갔고 결국 차가운 감옥에 갇혔다가 죽음을 당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또한 사도 바울은 자신을 나는 풍성한 삶을 산 사람이다 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빌립보서 4:11 “내가 궁핍해서 이렇게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나는 어떤 처지에서도 스스로 만족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18절 “나는 모든 것을 받아서 풍족하게 지내고 있습니다.” 19절 “나의 하나님께서 자기의 풍성하심을 따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영광으로 여러분에게 필요한 것을 모두 채워 주실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자“나는 풍성한 삶을 살고 있다, 기뻐하고 있다, 만족하고 있다” 라고 고백하고 있는 상황은 바로 감옥 안이라는 사실입니다. 어떻게 사도 바울과 같이 감옥에서 풍성한 삶을 살 수 있을까요?

오늘 본문에서 그러한 원리를 알려 줍니다. 풍성한 삶을 살기 위해서 필요한 첫 번째 원리는 분명한 삶의 목적이 있어야 합니다. 아무리 생활이 힘들고 어렵더라도 자신이 살아야 할 목적이 있는 사람들은 쉽게 무너지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쉽게 지치고 삶의 무게를 감당하지 못하고 더 나아가 자신의 생명까지 포기하는 이유는 삶의 무게가 너무 무겁기 때문이 아닙니다. 삶의 목적이 더 이상 보이지 않을 때, 살아야 할 이유와 목적이 상실 될 때 사는 것이 힘 드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도 목적을 가지고 사는 사람들은 어려운 고난과 힘든 환경을 이겨냅니다. 그 고난과 어려움 속에서도 소망을 가지며 살아갑니다. 시험에 합격만 하면, 결혼만 하면, 승진만 하면, 집을 사기만 하면, 자식이 크기만 하면 등등의 분명한 목적을 가진 사람들은 힘을 내서 어려움들을 이겨냅니다. 그러나 문제는 그 목적이 영원한 것이 아니고 내가 바랬던 결과를 주지 않을 때 결국은 낙심하고 상처와 좌절을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달랐습니다. 2:1 “여러분과 라오디게에 있는 사람들과 그밖에 내 얼굴을 직접 보지 못한 사람들을 위하여 내가 얼마나 애쓰고 있는지 여러분이 알기를 바랍니다” 사도 바울은 무엇이라고 말합니까? 한번도 만나보지도 못한 사람들을 위하여 애쓰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1:29절과 연관되어 있습니다. “이 일을 위하여 나도 내 속에서 능력으로 작용하는 그 분의 활력을 따라 수고하며 애쓰고 있습니다”

수고 한다는 단어는 코피오 즉 코피가 터지도록 일한다는 말입니다. 사도 바울의 삶의 목적이 무엇이었습니까? 그리스도를 알아가며 그리스도를 전하는 일이었습니다. 자신이 만난 그리스도 예수를 전하고 알리는 일이 사도 바울의 삶의 목적이었습니다. 이 구절이 중요한 이유는 그가 애쓰고 힘쓰는 장소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은 지금 감옥에 있습니다. 감옥에서 무엇을 할 수 있습니까? 낙담하지 않으면 다행입니다. 자기 자신 한 몸을 감당만 해도 다행입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은 그 감옥에서 골로새 교회 성도들이 그리스도를 바로 알게 하기 위해서 열심히 기도하며 편지를 쓰며 최선을 다해 수고 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루어야 할 분명한 목표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입니다.

이것이 바로 풍성한 삶을 살아가는 비결입니다. 내 환경이 좋으면 내 삶이 풍성할 것 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그것을 가져 보면 또 다른 목마름이 생깁니다. 생의 분명한 목표를 갖고 있는 것이 중요합니다. 사도 바울은 몇 달 뒤에 나오는 감옥이 아니라 언제 죽을지 모르는 감옥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풍성한 삶을 살 수 있었습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주신 분명한 사명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소명을 갖고 사는 사람은 여유가 있습니다. 바쁘고 피곤해도 남을 위해서 살 수 있고 마음에 여유가 있습니다. 상황이 힘들어도 인내하며 감사함으로 이겨 냅니다. 이것이 사도 바울이 감옥에서 기뻐할 수 있는 이유였습니다. 삶을 풍성하게 살기 원하시면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주신 목적을 발견해야 합니다. 모르면 하나님께 기도하여 물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알고, 주신 사명을 아는 사람들만이 풍성한 삶을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의 삶을 우리에게 보여 주시는 것은 그러한 사도 바울과 같이 하나님의 부르심과 분명한 목적을 알아 풍성한 삶을 살아가시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두 번째, 풍성한 삶을 살려면 삶의 근원이신 그리스도를 깨달아가야 합니다. 2:2-3 “내가 이렇게 하는 것은 여러분 모두가 사랑으로 결속되어 마음에 격려를 받고 깨달음에서 생기는 충만한 확신의 모든 풍요에 이르고 하나님의 비밀인 그리스도를 온전히 알게 하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는 모든 지혜와 지식의 보화가 감추어져 있습니다” 바울은 무엇을 위해서 감옥에서 열심을 내었습니까? 바로 골로새 교회에 그리스도를 알리기 위해서. 다른 사람들에게 그리스도를 깨닫게 하기 위해서 살아갔습니다. 그것이 목적이었습니다. 왜 사도 바울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애를 썼습니까? 그것은 자신이 그리스도를 체험했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은 처음부터 그리스도를 전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그리스도를 증오하여 예수를 믿는 사람을 죽이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다가 예수를 믿는 사람들을 체포하기 위해 다메섹 도시로 가는 길에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 하늘에서 목소리가 들립니다. 자신이 핍박하던 예수가 하나님이신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 후에 3년간 아라비아 광야에 들어가 예수님을 다시 만나고 배우게 됩니다. 그후 그의 삶의 목적이 바뀌었습니다. 예수 안에 모든 지혜와 부요함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천국을 보게 됩니다. 예수를 믿음으로 얻는 놀라운 하늘의 복들이 무엇인가를 보고 깨닫습니다.

이 땅에 아무리 많은 것을 가져도 그것은 우리를 더욱 갈증 나게 할 뿐입니다. 이 세상의 성공과 물질,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참으로 만나고 깨달아 가면 세상의 있는 것들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깨닫습니다. 사도 바울은 빌립보서에 3:7-9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 뿐 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 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라” 자신이 예수 그리스도를 안후에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을 배설물, 오물로 여겼다고 말합니다. 그리스도와 비교해 보니까 세상의 있는 것들은 그렇게 가치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세상에 가장 귀한 것, 영원한 것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기로 결단하고 삶의 목적으로 삼은 것입니다.

삶에 목적이 있는 것은 좋은 것입니다. 그러나 그 목적들이 다 좋은 것은 아닙니다. 다 영원한 것이 아닙니다. 잠언 16:25 “어떤 길은 사람의 보기에 바르나 필경은 사망의 길이니라” 목적이 다 좋은 것이 아닙니다. 목적을 갖되 좋은 것, 바른 것을 가져야 합니다. 마태복음 7:13-14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 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음이니라” 우리를 생명으로 인도하는 좁은 문이 누구십니까?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요한복음 10:9 “내가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얻고 또는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으리라” 이 땅에 살면서 예수를 바로 깨달으면 꼴을 얻습니다. 풍성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으면 죽어 천국만 아니라 이 땅에서도 풍성한 삶을 살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풍성한 삶을 얻게 하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그 분을 깊이 묵상하고 알아가면 풍성한 삶을 누릴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를 깊이 알 수 있습니까? 2절을 다시 보겠습니다. “내가 이렇게 하는 것은 여러분 모두가 사랑으로 결속되어 마음에 격려를 받고 깨달음에서 생기는 충만한 확신의 모든 풍요에 이르고 하나님의 비밀인 그리스도를 온전히 알게 하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는 모든 지혜와 지식의 보화가 감추어져 있습니다”무슨 말씀입니까? 그리스도를 깊이 깨달을 수 있는 것은 사랑 안에서 예수님과 연합할 때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다시 한번 읽습니다“내가 이렇게 하는 것은 여러분 모두가 사랑으로 결속되어”

풍성한 삶은 나를 향한 그 놀라운 예수님의 십자가의 사랑, 자기 목숨까지 아끼지 않으시고 내어 주신 그 사랑, 죄인 된 나를 오래 참고 기다리신 그 사랑을 깨닫고 받은 사랑으로 예수님을 온 맘과 뜻과 정성을 다해 사랑할 때 풍성한 삶을 살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예수님께서도 낙심과 좌절, 후회함으로 사명을 내려 놓고 바다에 나가 고기를 잡고 있는 베드로를 찾아가 질문하셨던 질문이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네가 이 사람들 보다, 이 세상의 어떤 것 보다 나를 사랑하느냐?” 라고 질문하시고 “사랑합니다” 라는 대답을 했을 때 “내 양을 먹이라” 라는 사명을 다시 주신 것입니다.

우리가 사랑하게 될 때 그리스도를 깨닫게 됩니다. 우리가 주님과 사랑의 관계로 결합되어 있을 때 나를 사랑하시는 그 놀라운 사랑으로 인해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풍성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사명을 기쁨으로 끝까지 충성되이 감당할 수 있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이 주신 복음의 사명을 굳게 붙들고 그리스도의 사랑을 깨닫고 그 사랑 안에 거하여 풍성한 삶을 살아가기를 축원합니다.

Category말씀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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