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사도행전 9:1-15

1 사울은 여전히 주님의 제자들을 위협하면서 살기를 띠고 있었다. 그는 대제사장에게 가서
2 다마스쿠스에 있는 여러 회당으로 보내는 편지를 써 달라고 하였다. 그는 그 도를 믿는 사람은 남자나 여자나 가리지 않고 닥치는 대로 묶어서 예루살렘으로 끌고 오려는 것이었다.
3 사울이 길을 가다가, 다마스쿠스 가까이에 이르렀을 때에, 갑자기 하늘에서 환한 빛이 그를 둘러 비추었다.
4 그는 땅에 엎어졌다. 그리고 그는 “사울아, 사울아, 네가 왜 나를 핍박하느냐?” 하는 음성을 들었다.
5 그래서 그가 “주님, 누구십니까?” 하고 물으니,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다.
6 일어나서, 성 안으로 들어가거라. 네가 해야 할 일을 일러 줄 사람이 있을 것이다” 하는 음성이 들려왔다.
7 그와 동행하는 사람들은 소리는 들었으나, 아무도 보이지는 않으므로, 말을 못하고 멍하게 서 있었다.
8 사울은 땅에서 일어나서 눈을 떴으나, 아무것도 볼 수가 없었다. 그래서 사람들이 그의 손을 끌고, 다마스쿠스로 데리고 갔다.
9 그는 사흘 동안 앞을 보지 못하는 상태에서,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않았다.
10 그런데 다마스쿠스에는 아나니아라는 제자가 있었다. 주님께서 환상 가운데서 “아나니아야!” 하고 부르시니, 아나니아가 “주님, 여기 있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11 주님께서 아나니아에게 말씀하셨다. “일어나서 ‘곧은 길’이라 부르는 거리로 가서, 유다의 집에서 사울이라는 다소 사람을 찾아라. 그는 지금 기도하고 있다.
12 그는 [환상 속에] 아나니아라는 사람이 들어와서, 자기에게 손을 얹어 시력을 회복시켜 주는 것을 보았다.”
13 아나니아가 대답하였다. “주님, 그가 예루살렘에서 주님의 성도들에게 얼마나 해를 끼쳤는지를, 나는 많은 사람에게서 들었습니다.
14 그리고 그는 주님의 이름을 부르는 사람들을 잡아 갈 권한을 대제사장들에게서 받아 가지고, 여기에 와 있습니다.”
15 주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가거라, 그는 내 이름을 이방 사람들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 앞에 가지고 갈, 내가 택한 내 그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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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는 사물을 볼 수 있는 두 개의 눈이 있습니다. 우리는 눈을 통해서 세상을 봅니다. 그러나 우리가 가지고 있는 눈은 온전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눈은 현재만 볼 수 있는 눈입니다. 미래를 보지 못합니다. 우리의 눈은 또한 겉모습만 봅니다. 속사람을 보지 못합니다.

성경에서 보면 세상 사람들이 어린 다윗을 보았을 때 그의 아버지와 형제들까지도 다윗을 단지 막내 아들이요 양이나 치는 보잘것 없는 목동으로 보았습니다. 그래서 선지자 사무엘이 이새의 집에 찾아와 왕으로 세울 아들을 보여 달라고 할 때 막내 아들인 다윗은 부르지도 않았습니다. 사람들은 다윗은 단지 어린 소년, 목동에 불과한 볼품없는 사람으로 보았지만 하나님께서는 다윗을 왕으로 보셨습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인 사도행전을 보면 그와 같은 내용이 나옵니다. 스데반을 죽였던 사울, 예수를 믿는 자들을 누구보다 앞장서서 잡아 핍박하고 죽였던 사울이란 사람에 대해 모두가 사울은 빨리 죽었으면 하는 악인으로 보았습니다. 아무도 그 당시 사울을 하나님께서 쓰실 놀라운 사람으로 보지 않았습니다. 예수를 믿는 사람들을 누구보다 핍박했던 사울. 아무도 사울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을 유대인인들과 더 나아가 세상의 모든 사람들에게 전하여 복음이 세상 끝까지 전파되는데 쓰일 놀라운 사도가 될 것이라는 것을 보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사울을 택하셨고 사용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사울을 택하여 세상 끝까지 복음을 들고 나가는 사도 바울이 되게 하신 다메섹 사건을 통하여 우리 또한 나를 통하여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시기 원하시는 하나님의 시각을 볼 수 있는 시간이 되기를 원합니다.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이 이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이 나를 바라보는 나와 하나님이 바라보시는 내가 다르다는 것입니다. 내가 나를 보는 나와 하나님께서 보시는 내가 다르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다윗을 볼 때 별 볼일 없는 어린 목동으로 보았지만 하나님께서는 다윗을 위대한 이스라엘을 회복시키고 강성케 할 왕이요, 메시야의 계보를 잇는 위대한 왕으로 보시고 부르셨습니다.

시골 동네, 배우지 못하고 가진 것 없이 살아가던 어부 시몬에게 교회의 기둥이 될 베드로를 보시고 부르신 하나님, 매국노라는 손가락질을 받으며 양심보다 자신의 이익을 따라 살아가던 세리 마태에게 복음을 전하며 복음서를 쓰는 사도 마태를 보시고 부르신 하나님, 인간적인 눈으로 볼 때 교회에 핍박을 하고 복음에 걸림돌이 되었던 사울을 복음을 위해 전심전력하여 세상 끝까지 복음을 전하는 자로 보시고 부르신 하나님을 우리가 바로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보시는 나와 다른 사람들이 보는 나는 다릅니다.

다른 사람이 지금의 나를 어떻게 보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나를 어떻게 보시느냐를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다른 사람이 나에 대해서 어떻게 보고 어떻게 말하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나를 어떻게 보시고 어떻게 사용하기를 원하시는가가 중요합니다. 사실 우리는 다른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보고 어떻게 평가하느냐에 큰 관심을 가집니다. 누가 나에 대해 어떤 말을 하면 귀를 쫑긋거립니다. 다른 사람이 나에게 한 말 한마디에 기뻐하기도 하고 참담해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내가 내 자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평가하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어떻게 보시느냐가 중요합니다.

오늘 말씀에 하나님께서 바울을 향하여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는 내가 택한 나의 그릇이다”주어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바울을 자신이 사용하실 그릇으로 보시고 택하셨다는 것입니다. 세상은, 사단은, 다른 사람들은, 대부분 우리를 쓰임받기 부족한 존재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의 연약함을 아시지만 우리를 통하여 놀라운 일을 행하실 것을 보십니다. 우리를 통하여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를 이루실 것을 보십니다.

하나님이 선택함을 받고 쓰임 받을 수 있었던 사울의 모습을 우리가 함께 돌아보기를 원합니다. 어떻게 사울은 하나님께 쓰임 받을 수 있었습니까? 그것은 첫째, 바울의 삶에는 다메섹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3절 “사울이 길을 가다가 다마스쿠스 가까이에 이르렀을 때에 갑자기 하늘에서 환한 빛이 그를 비추었다” 사울이 바울이 되고 사울이 하나님께 놀랍게 쓰임 받을 수 있었던 첫 번째 이유는 바울의 삶에는 다메섹에서의 주님과의 분명한 만남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자들을 누구보다 핍박했던 사울이 다메섹으로 가는 길에서 예수님을 만남으로 그의 삶이 완전히 변했고 하나님께 쓰임 받는 자로 변하게 되었습니다.

우리의 삶에 누구를 만나느냐가 참으로 중요합니다. 누구와 만나느냐가 내 삶을 결정하기 때문입니다. 어느 시기에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 내 직업이 결정된다는 말이 있습니다. 맞는 것 같습니다. 누구를 만나느냐가 내 직업만 아니라 내 인생도 결정하게 되는 큰 역할을 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사울이 예수님을 만납니다. 예수님과의 만남을 통해서 핍박자 사울에서 복음을 전하는 사도 바울로 변하게 됩니다. 예수님과 진정 만난 그 만남은 단지 한 개인의 만남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핍박자 사울이 예수님을 만남으로 세상에 많은 영혼들이 예수님을 만난 그 바울을 통하여 예수님을 만나게 되고 구원을 받게 됩니다. 우리가 이 땅에 살면서 수많은 만남을 만나지만 예수님을 만나는 것처럼 중요한 것이 없습니다. 예수님을 진정 만날 때 우리의 인생이 축복의 인생으로 변합니다.

사울은 다메섹에서 예수님과의 인격적인 만남을 만났습니다. 그 만남을 통해 사울이 변하여 바울이 되고 그의 삶이 진정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여 수많은 영혼들을 하나님께 돌아오게 하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영광스러운 삶으로 변화되었습니다.

사울은 나름대로 하나님을 안다고 생각했던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를 믿는 자들을 핍박하고 잡아 죽이는 것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살았던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을 안다고 하고 믿는다고 하지만 전혀 엉뚱한 길로 갔던 이유가 바로 진정 하나님을 만나지 못하고, 진정 예수 그리스도를 인격적으로 개인적으로 만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세상 밖에 사람들은 당연히 하나님을 알지도 만나지도 못했기 때문에 믿지 못하지만 교회 안에서도 많은 교인들이 하나님을 개인적으로 만나지 못하고,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지 못하고도 자신은 하나님을 알고 믿는다고 생각하며 자기 뜻대로 살아가는 자들이 많습니다. 하나님을 진정 만나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진정 만나 나의 구세주 나의 주님으로 고백해야 합니다.

본문을 읽고 묵상하면서 감사한 것은 주님과 사울의 만남은 사울이 하나님을 만나려고 애를 썼기 때문에 만난 만남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로 하나님께서 사울을 만나주셨다는 것입니다. 본문을 보면 사울은 예수를 믿는 자들을 핍박하기 위해서 다메섹으로 가고 있는 길이었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사울을 만나시러 나타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어떠한 분이십니까? 우리를 만나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찾기 전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먼저 찾으십니다. 우리가 어떠한 모습으로 있든지 상관없이 하나님의 마음은 우리를 만나기 위해 찾아오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모세를 보십시오. 모세가 하나님을 찾았습니까? 아닙니다. 그저 양을 치고 있는데 모세를 찾아와 주셨습니다. 베드로와 제자들은 어떻습니까? 갈릴리 바다에서 그저 고기를 잡고 있었는데 주님께서 찾아와 주셨습니다. 잃어버린 한 양을 찾기 위해 99마리 양을 놔두고 찾을 때까지 찾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모세에게는 하나님께서 찾아오신 호렙산이 있었고 사울에게는 다메섹이 있었습니다. 여러분에게는 어디입니까? 바로 이 예배의 자리가 되어야 합니다. 10년전, 20년전에 하나님께서 나를 만나 주신 과거의 만남이 아니라 기도와 말씀으로 살아가는 매일의 삶이 우리의 다메섹이 되기를 원합니다.

사울이 바울이 되어 하나님께 쓰임 받게 된 것은 둘째, 기도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11절 “주님께서 아나니아에게 말씀하셨다. 일어나서 곧은 길이라 부르는 거리고 가서 유다의 집에서 사울이라는 다소 사람을 찾아라 그는 지금 기도하고 있다”사울은 예수를 알지 못할 때 자신은 하나님을 위한 일이라 생각해서 다메섹에 가서 예수 믿는 자들을 잡으려고 가던 중에 예수님을 만난 것입니다. 예수가 이단이고 예수를 믿는 것은 하나님을 배신하는 일이라고 확신했기 때문에 죽기 살기로 예수 믿는 사람들을 잡아 죽였는데 그 예수님이 바로 하나님이심을 알게 된 사울에게는 충격이었습니다. 다메섹 도상에서 눈까지 멀었습니다.

내가 믿고 확신해서 목숨을 걸고 행했던 일이, 나름대로 하나님의 영광과 하나님을 위하여 행했다던 일들을 보니까 하나님의 일을 막고 방해했던 역적 행위였다는 것을 사울이 깨달았습니다. 사울에게는 너무나 충격이었습니다. 앞을 보지 못하는 장님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바로 알지 못하면 내 나름대로는 하나님을 위하는 일이라고, 교회를 위하는 일이라고 하는 일이 하나님의 일을 막고 교회를 어렵게 하는 일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교회를 어렵게 하고 성도를 힘들게 하는 사람들은 자기 생각으로는 다 그 성도를 위하고 교회를 위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열심히 하고 있다고 착각한다는 것입니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하나님께서 만나 주실 때 내 모습이, 내 행동이 얼마나 어리석고 얼마나 하나님과 교회와 성도들에게 해를 주었는지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바울이 자신의 진정한 모습을 깨달았습니다. 충격이었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열심과 충성이라고 생각했는데 하나님으로부터 “어찌 네가 나를 핍박하느냐?” 라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그럴 때 여러분이었다면 어떤 반응을 보였겠습니까? 저는 바울의 성격이었다면 목 매달아 죽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바울의 반응은 기도했다는 것입니다. 금식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회개했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변명하지 않았습니다. 도망치지 않았습니다. 스스로 죄값을 치루겠다고 목숨을 끊지 않았습니다. 하나님 앞에 금식하며 회개하며 기도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그러한 바울의 모습을 보기를 원하십니다. 사도 바울에게는 다메섹이 있었고 사도 바울에게는 기도가 있었습니다.

사울이 바울이 될 수 있었고 하나님께서 바울을 사용하여 놀라운 구원의 선교 사역을 감당하게 하신 것은 바울은 기도의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잘못을 깨달았을 때 바울은 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고 바로 금식하며 회개하며 하나님께 기도하였습니다. 분명 기도 아닌 인간적인 반응을 보일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바울이 보인 첫 반응은 기도였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모습입니다.

하나님께서 잘못됨과 죄에 대해 보이시고 말씀하실 때 회개하며 기도하는 사람을 통하여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일에 쓰십니다. 하나님께서는 기도하는 자를 만나 주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11절 “주님께서 아나니아에게 말씀하셨다. 일어나서 곧은 길이라 부르는 거리고 가서 유다의 집에서 사울이라는 다소 사람을 찾아라. 그는 지금 기도하고 있다”하나님께서는 회개하며 기도하는 자를 만나 주시고, 기도하는 자를 인도하시며, 기도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길을 보이십니다.

사도 바울과 같이 우리에게 주님을 만나는 다메섹이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매일의 삶 속에 말씀으로 주님을 만나며 기도함 속에 주님을 만나는 자리를 통하여 인간적인 생각과 뜻으로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면서 교회와 하나님의 사역을 방해했던 사울이 아니라 바울이 되어 하나님의 택한 그릇으로 귀히 쓰임 받는 하나님의 사람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Category말씀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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